2019년 6월 16일

이태리 베니스에서

아름다운 피렌체(플로렌스)로 가다. ^^



버스에서 내리며 처음 눈에 보인 우산소나무 ^^



중앙에 보이는 피렌체 두오모(Firenze Duomo) 성당

피렌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언덕에서...
   




단테의 흉상이 부착된 단테의 집 (Casa di Dante)


피렌체가 낳은 또 한명의 위인 단테.

 단테가 희대의 미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건 9살~10살때라고...

 단테 스스로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말했다고 한다.<인터넷에서>

 

단테 집 앞 바닥에 있는 단테 얼굴문양이라고...^^


피렌체 두오모(Firenze Duomo) 성당

    
이 건물은 1292년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1446년에 완성되었다.

디자인은 아르놀프 디 캄비오가 담당하다가 1334년 지오토가 작업을 계속하였고, 몇 년 후 프란체스코 탈렌티와 라포 기니가 대성당을 완성시켰다.

1436년,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돔을 추가로 건설하였다.

두오모의 정문은 1587년에 무너져 버려서 현재의 정문은 1887년도 작품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원래의 흔적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장식들은 현재 두오모 박물관에 있다.

두오모 박물관에 가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도나텔로의 〈마다레나〉 그리고 베로키오, 미켈로초, 폴라이올로가 세운 제단 등을 볼 수 있다.

두오모 내부로 들어가면 여러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돔에 올라가는 총 계단은 463계단이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인터넷에서>





두오모성당 종탑인 '조토의 탑' (높이 85m)


피렌체의 영광을 만들기 시작한 코지모의 기마상 (1594년, 진품)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옛날 건물, 혹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 베키오 궁전 앞이 시뇨리아 광장이다. 1294년에 지어졌고 나중에 부온탈렌티와 바자리에 의해 확장 건설되었다. 처음 만들 때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1540년에 메디치 가문이 이 궁전에 들어와 10년 정도 이곳에 머물다가 피티 궁전으로 이사를 갔다. 이때 사람들이 새 건물을 누오보, 옛 건물을 베키오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건물은 정원이 유명하며, 500인의 방(Salone Cinquecento), 2층에 있는 시뇨리아의 방(Cappela della Signoria), 우디엔자의 방(Sala dell’Udienza)에 많은 미술품들이 보관되어 있다.<인터넷에서>


메디치 가문

죠반니 디 비치 메디치는 은행가였으며, 그의 아들 코지모는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아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으며 로렌초는 많은 지식인들을 돌봐 주었다.

이 집안에서 두 명의 교황이 선출되기도 하였다. 레오네 10세와 클레멘스 7세가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었으니 이 가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인터넷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모조품이며 진품은 아카데미아 갤러리에 있다고...


헤라클레스와 카쿠스 상



<사비니 여인의 납치>


조각가는 조반니 다 볼로냐(1529~1608)이지만 잠볼로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플랑드르(북프랑스-남벨기에) 지방에서 태어나 20대 중반에 이탈리아에서 조각가로 활동했다. 30대 중반에는 볼로냐의 광장 분수에 설치된 <넴튠 분수(1563~1566)> 청동상을 만들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피렌체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아 피렌체에 여러가지 조각상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baudgks 걸작이 1583년 제작한 4.1m 높이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이다. 시뇨리아 광장에 설치된 코시모 1세의 청동 기마상(1593)도 그의 작품이다.

  <사비니 여인의 납치>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753년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 의 인구고민에서 부터 출발한다. 로물루스는 해결책으로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여성을 보충하기 위하여 이웃 부족인 사바니족의 여인들을 강탈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인근 도시들이 로마를 두려워 하여 로물루스가 보낸 사절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자 로물루스는 훗날 로마 최대-최초의 대전차 경기장이 되는 키르쿠스 막시무스가 들어서는 곳에서 개최하는 바다의 축제에 사비니족을 초대하면서 여성들을 데리고 오도록 당부한다. 로마의 군인들은 축제에 참가한 사비니족 남자들을 만취케하고 그 틈을 타 여인들을 강탈하였다. 로물루스도 사비니 여인을 납치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자 사비니의 남자들은 몇 년 후 사비니족 여인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미 로마인의 자식을 낳아 그들과 살고 있는 사비니의 여인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 수 없어 전장으로 뛰어들어무기를 버리고 화친할 것을 호소한다. 이후 사비니와 로마는 화해하고 동맹을 맺었다. 사비니족은 기원전 460년 경 다시 로마와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사비니 여인의 납치>는 16세기부터 서양 미술사에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잠볼로냐의 <사비니여인의 납치>조각상이다. 사비니족 여인을 강탈하려고 여인을 위로 들어올린 로마 병사, 겁에 질린 채 절규하는 사비니 여인, 약탈자를 막지 못하고 옆에 쭈그리고 앉아 체념한 듯한 표정의 노인을 통해 당시의 비극적 현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에서>  

켄타우로스(Kentauros)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지금까지 피렌체의 행정의 중심지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옥외 미술관 로지아 데이 란치를 볼 수 있다.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회화 걸작들을 모아 놓은 우피치 미술관과 아르노 강에 놓인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가 있다.

시뇨리아 광장은 메디치 가문이 살고 있던 베키오 궁전과 함께 융성한 곳이다.

시뇨리아 광장이 피렌체의 중심으로 활약한 것은 13, 14세기였다. 이때 활동한 작가가 단테, 지오토, 페트라르카 그리고 보카치오다.

그 이후에도 계속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장악했는데 이때 활동한 예술가로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베아토, 안젤리코, 필리페, 리피,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있다. <인터넷에서>



고속도로에서 로마시절의 고속도로에 심어진 우산나무를 보며 로마로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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