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廣州市) 중부면(中部面) 남한산에 있는 산성.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에 1595년(선조 28) 축조하기 시작하여 1624년(인조 2) 완성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축(重修築)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의하면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해서 1626년(인조 4) 7월에 끝마친 것으로 되어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 싸워 보지도 못하고 45일 만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곳으로 유명하며 한때 백제의 왕도(王都)였다. 병자호란 후에 숙종(肅宗)·영조(英祖)·정조(正祖)의 3대에 걸쳐 봉암외성(峰岩外城)·한봉외성(漢峰外城)·신남성(新南城)·포루(砲壘)·돈대(墩臺)·옹성(甕城)·암문(暗門) 등을 증축하였고 동·서·남의 3문에 문루(門樓), 4방에 장대(將臺)를 축조하였다. 당시에 성군(聖軍)으로서의 불도(佛徒)의 힘은 막강하여 이 산성의 축성에도 승려 각성(覺性)이 도총섭(都摠攝)이 되어 팔도에 있는 승군(僧軍)을 모아서 현존하는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하여 개원(開元)·한흥(漢興)·국청(國淸)·천주(天柱)·동림(東林)·남단(南壇)의 7사(寺)를 창건하였다. 성벽 주위는 약 8㎞이고, 성내에는 숭렬전(崇烈殿)·연무관(演武館)·침과정(枕戈亭)이 있으며 백제의 토기·와편(瓦片) 등이 발견되었다. 현재의 성벽은 1621년(광해군 13)부터 1626년(인조 4) 사이에 여러 차례 중·수축된 것이다. 사적 제57호.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출구이용
산행 : 동장대까지 왕복 약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