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경영론에서

 

서약봉(徐藥峰)의 어머니-[이씨부인]

 

약봉(藥峰) 서성()의 어머니 이씨부인은 재덕(材德)을 겸비한 어진 부인으로, 한미한 집안을 일으켜 명족을 이루어 문호를 빛낸 사람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두 눈을 다 못 보는 맹인(盲人)이었다.
그가 자람에 그의 아버지 이승지(李承指)는 늘 눈먼 딸을 측은이 여기고 어떻게라도 시집을 보내 그로 하여금 인생을 원한이나 없게 하여 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매파를 놓아 딸의 눈먼 것을 속여 혼인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신랑은 가난한 선비 서해(徐懈)이었는데, 혼인 날 신부 집에서 초례를 치른 다음 첫날밤에 신부를 대하고 보니 이  어찌 된 일이냐, 백년을 해로할 신부가 눈먼 장님이 아닌가.  너무도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선비라고 혼인에 속인 것이 분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비록 혼례는 이루었으나 아직 첫날밤을 치르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파혼이 늦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 길로 일어서서 나오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신부를 살펴 보았다.「장님만 아니었더라면 ……」참으로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말없이 앉아있는 신부의 모습은 비록 눈은 멀었을망정 몹시 어질어 보이고 덕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를 버리고 나간 뒤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부끄러운 나머지 필연코 목숨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 않을 것은 뻔했다.  그렇다면 이는 또한 적악(積惡)이 아닌가.  성현의 글을 읽은 선비로서 한 여자로 하여금 원귀(怨鬼)가 되게 한다는 일도 차마 못할 일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뜻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신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첩이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 폐안(廢眼)이 된 몸으로 외람히 낭군을 섬기려고 하였으니 어떠한 미움과 죄라도 감수하겠습니다만, 부모로 말씀하오면 오직 이 한 몸을 불쌍히 여기시어 자손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옳지 않은 줄 아시면서 매작을 속인 것이니, 모든 죄는 이 한 몸이 지겠사오니 아예 첩의 부모를 책하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 몸이 진작 죽지 못하고 있사옴은 오직 부모의 사랑을 저버리고 불효의 죄를 짓지 아니하려 함이었으나, 오늘 밤을 당함에 진작 죽지 못한 것이 한될 뿐이옵니다. 다행히 낭군께서 첩의 죄를 용서하시고 비를 들고 뜰을 쓰는 소임을 맡겨 주신다면, 이는 첩의 부모와 첩의 세 사람을 살리시는 큰 은혜가 되겠습니다만 이를 어찌 감히 바라기나 할 수 있사오리까」하고 그저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 태도가 현숙할 뿐만 아니라 그 말이 또한 도리에 맞으니 신랑이 속으로 크게 감동하고, 한편 측은한 마음이 들어 미처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신부는 품 속에서 칼을 꺼내 들고「이제 이 몸이 취할 길은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하더니 자결하려고 하였다.
이때 문밖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던 이승지 부부가 뛰어들어 딸을 말리고 신랑에게 사죄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이에 신랑도 마음을 돌려 그 날 밤을 무사히 치르고, 신부는 시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뒤로 이씨부인은 효로써 시어머니를 섬기고,  순함으로써 남편을 섬기니, 내외간의 의가 좋아 늘 집안이 화락하였고, 부인이 살림을 잘 꾸려 사는 것도 점차 나아져갔으나, 30도 되기 전에 아들 하나를 남긴 채 남편(서해)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씨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약현(藥峴)이라는 데서 살며 그 묘한 솜씨로 술을 빚고 약과를 만들어, 그것을 팔아 집안 살림을 해 나가며 아들의 학자금을 대었다고 하는 데, 오늘날의 약주(藥酒), 약과(藥果)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비롯한 것으로, 약현(藥峴)의 지명에서 떼어다 붙인 것이고, 서성의 호(號)를 약봉이라고 한 것도 거기서 떼어다 붙인 것이라고 한다.
아들 약봉은 선조(宣祖) 병술년에 과거에 오르고, 나중에 벼슬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는데, 며느리인 송씨(宋氏) 또한 현덕이 있는 부인으로, 그 시어머니의 뜻을 잘 받들어 효도하고 남편을 잘 섬기니 보는 이마다 이 고부(姑婦)를 공경하고 그 현덕을 경앙(景仰)하였다.
이씨부인의 나이 90세에 이르고, 송부인의 나이가 60세가 되어도 그 시어머니 봉양을 한결같이 하였으며, 자손들 교훈이 또한 엄정하여 그 아들들이 뒤에 모두 현달(顯達)하여 경우는 우의정, 경주는 부마가 되니, 그 집안의 혁혁해짐이 그 어머니의 힘이라 할 수 있다.

 



P 워나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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