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 발칸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비극의 현장이자 영화"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인 아우슈비츠 유대인 수용소는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km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로,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그 시설 그대로를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폴란드 명은 오슈비엥침(Oswiecim)이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아래 나치스 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고 한다. 
나치는 오슈비엥침의 유태인 제1수용소가 수용인원이 넘치자 이곳에서 3km 떨어진 브제진카(독일식
표기는 비르케나우)마을에 제1수용소의 10배 가량의 브제징카 제2 유태인수용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관광 안내자료에서>


역사의 현장이자 관광코스라 돌아 보긴 했지만, 섬찟하고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는 어찌보면 한많은 영혼들의 울부짓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만 같은 곳으로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박물관이다.

 

 

 

아우슈비츠수용소 박물관에서 입장권을 발급받는 동안 기다리는 일행들......

 

 

 

 

 

 

 

 

 

 

 

 

아우슈비츠에서 점심 식사를 한 식당 내부 모습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 입구의 철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라는 기만적인 나치의 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제1수용소 건물들은 빨간 벽돌건물들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1947년에 세워진 희생자 박물관은 1979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수용소 철조망은 2중으로 되어 있고 전기가 통하게 되어 있어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다. 우리 나라의 휴전선 철조망과는 비교도 안되게 철저하게 되어 있어 이곳에 들어온 수용자들은 단 한명도 살아서 나간 사람이 없단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는 전체 28동으로 되어 있는데, 약 150만명이 이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에서 처형당한 장애인들의 의수족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머리털로 짠 담요라고 하니,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민다.

당시 지리적인 근접성으로 러시아군이 먼저 폴란드에 들어 왔을 때, 발견된 여자 머리카락이 3톤이었고 보통은 6~7톤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독일군은 이 머리카락으로 군용모포를 만들어 각 군부대에 보급했다고 한다.

 

처형당한 사람들의 안경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사람들이 소지 했던 구두약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사람들이 소지 했던 머리빗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사람들의 신, 너무도 엄청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어린이들의 옷, 그러니까 어린이들까지 모두 처형했다는 증거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사람들이 맏겨 놓은 가방들, 나갈 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가방에 이름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유럽의 중심이라고 소개하는 가이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처형 당한 사람들의 기록사진들이다. 그 당시 나치가 사진 찌어 놓았던 것을 폐기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곳 말고는 모든 수용소를 파기시켜서 흔적을 없앴다고 한다. 잔인무도한 나치, 그들도 후일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브제징카(독일식 표기는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손으로 가리키는 가이드
아우슈비츠의 10배 규모이며 제2의 아우슈비츠이다. 이 곳의 입구는 '죽음의 문'이라고 불렸으며 열차 노선이 끝나는 부분에 '국제 위령비'가 있다.

그 유명한 나치가 개발한 가스는 한 통으로 400명을 죽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이 깡통만 보아도 짐작이 가고 기가 막힌다.

 

 

 

 

 

이 죽음의 가스실 앞에는 세척실이라고 쓰여 있었고, 입구에서 2인당 비누 한개씩을 나누워 주었다고 한다. 들어 가는 사람들이 씻으러 가는 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가스실에서 처형한 시체들은 이곳 화장장에서 소각시켰다고 하는데, 소각 시설이 여러개 있었으나 굴뚝은 한개이다. 이는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당시 수용소 담장에 쳐진 2중의 전기철조망과 망루, 수 많은 사람들의 비명과 함께 원망과 통한의 눈초리로 바라 보았을 철조망을 보니 분노와 함께 소름이 끼친다.

수용소 내에서 죽은 유대인이 150만명, 기타 정치범 등 유럽인들을 포함해 600만이라는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출구로 나온 아내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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