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0일

어느 선배 노인을 보고...

 

 

어린이 놀이터에서

손녀가 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아파트 화단에 있는 이름 모를 꽃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그리고 궁금해서 곧바로 '모야모'에 문의했더니 금방 답이 나왔다.

"탈리눔크랏시폴리움(Talinum crassifolium), Jewels of Opar, 산지카, 세시화, 열매안개, 잎안개, 자금성, 하제란, 황제꽃" .

참 이름도 많다 싶었다.

그런데 사진이 초점이 잘 안 맞아 다시 찍는데 그때마다 바람이 얄궂게 불어댄다. ㅜㅜ

그래서 찍고 또 찍고 지우고 반복을 하는데

자가용 승용차가 옆에 와서 멈추고 누군가를 내려주고 간다.

차에서 내린 사람이 찍는 꽃 이름이 뭔지 아느냐고 한다. ㅎㅎ

순간 나는 사진을 찍으며 "자금성 또는 세시화"라고 한다고 하고는 계속 사진을 찍는데

가까이 와서 말을 자꾸 건다.

비로소 나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꽤나 늙고 허접하게 보였는데

지팡이는 쌍지팡(스틱이 아님)이에 아주 작은 배낭(소지품을 넣은 듯)을 메고

허름한 옷에 꾀죄죄한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네였다.

게다가 뒤뚱뒤뚱 걸으며 자꾸 말을 걸고 아는 체를 한다.

그래서 나도 아는 체를 하며 보태서 말을 했더니 의외라는 듯

이것저것 주위 나무며 꽃이며 주서 섬기며 해설을 해준다.

나도 약간은 깔보고(?) 귀찮게 여겼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허망함(?)이랄까 헛됨을 느끼며

그 선배 노인을 통해 인생을 새로 배우고 있었다.

 

겉으로는 걸음도 잘 못 걷고 침을 흘리며 꾀죄죄하게 보이는 보잘 것 없는 노인 같은데

알고 보니 그분은 ROTC 7기 선배였으며, 101학군단 서울대 출신으로 임관하여

통역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외국인(?) 회사에서 일하다 퇴직하여

고궁에서 5개 국어로 숲 해설을 하였으며, 건강은 좋지 못하나 지금도 숲에 관한 책자를 쓰고 감수를 해주는 일을 한단다.

 

계속 모과나무를 보고 세 번을 놀란다는 이야기

회잎나무에 관한 이야기

장남의 집에는 향나무를 심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옆에 있는 향나무가 일본 거요? 우리 것이요? 묻는다.

갈수록 태산이나 재미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물어보았다.

어디가 편찮으신가?

 

파킨슨병 Parkinson's disease 으로 고생하신단다.

그래서 탁구를 치고 온다고 했다. 대단한 집념이다.

 

이야기를 계속하던 중 손녀가 왔다.

항상 집으로 가자면 더 놀고 간다던 손녀가

할아버지 그만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결국 그 선배 노인이 "나는 박*호 요"라고 자기 이름을 밝히며 바로 옆 아파트에 사신다고 한다.

그리고 내 이름과 전직을 물어 일러주고는 헤어져

손녀를 업고 집으로 오며

저렇게 열심히 사시는 분도 있구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그리고 어영부영 그냥 살지 말고

저 선배 노인과 같이 남은 삶을 열심을 다해 살아가며

인생을 즐겨야 하겠다 싶다. ^0^

 

 

 

금두님으로 부터 카톡으로 받은 글과 영상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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