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丘 徐氏 (대구 서씨)

 
시조 : 서한 (徐閈)
집성촌 : 경북 달성군 일원

대구 서씨(大丘徐氏)는 시조(始祖) 한 (閈:자는 인리)이 고려조(高麗朝)에서 군기소윤
(軍器少尹)을 지내고, 누대(累代)에 걸쳐 달성(達城:대구의 별호)에 정착 세거(定着世居)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대구(大丘)로 삼았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그는 낭장(郎將)을 지낸 영(潁)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이천 서씨(利川徐氏)에서 분적(分籍)된 계통(系統)으로 추정(推定)
되나 확실(確實)한 고증 자료가 없어 정확히 상고(詳考)할 수는 없다.
대구 서씨(大丘徐氏)는 시조(始祖) 한(閈)으로부터 7세손 익진(益進)에 이르기까지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어 최근(最近:1979년) 중간(重刊)된 「대구서씨세보(大丘徐氏世譜)」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모든 서씨(徐氏)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재(人才)를 배출한 가문(家門)으로 손꼽히는
대구서씨(大丘徐氏)는 특히 조선조(朝鮮朝)에서 세도가문(勢道家門)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사가정(四佳亭) 거정(居正)과 약봉(藥峯) 성(省)을
들 수 있다.
거정(居正)은 1420년(세종 2) 목사(牧使) 미성(彌性)의 둘째 아들이자 대제학(大提學)
권근(權近)의 외손(外孫)으로 태어나 24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사재감 직장
(司宰監直長)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세종(世宗)과 성종(成宗)에 이르는 6대왕조
(六代王朝)에 걸쳐 전후 45년 간 육조(六曹)의 판서(判書)와 대제학(大提學:홍문관,
예문관의 정 2품 벼슬) 등을 지내며, 대학자(大學者)로 더욱 명성을 날렸다.
문장(文章)과 글씨에도 능한 그는 성리학(性理學)은 물론 한문학(漢文學)과 천문(天文)
ㆍ지리(地理)ㆍ의약(醫藥) 등에 이르기까지 정통했고,「경국대전(經國大典)」ㆍ「동국통감
(東國通鑑)」ㆍ「대동여지승람(大東輿地勝覽)」등의 편찬(編纂)에도 참여했으며 왕명(王命)
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국역(國譯)했다.
한편 신라(新羅)이래 조선(朝鮮) 초기에 이르는 시문(詩文)을 엮은 「동문선(東文選)」과
「동인시화(東人詩話)」를 펴내는 등 조선조(朝鮮朝)의 한문학을 집대성하여
참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함재공(涵齋公) 해(嶰)의 아들인 성(渻)은 당대에 이름난 석학(碩學) 이퇴계(李退溪)의
문하(門下)에서 글을 읽고 나이 20에 문명(文名)을 날려 사림(士林)의 존경(尊敬)을
받았으며, 선조(宣祖) 때 5도 (五道)의 관찰사(觀察使)와 호조(戶曹)ㆍ형조(刑曹)ㆍ
공조 판서(工曹判書)등을 두루 역임한 후 광해군(光海君) 때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11년 간이나 유배 생활을 하였다.
1623년 (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뒤에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중추부의
종 1 품 벼슬)에 이르렀으며 그의 자손중에서 3대(代) 정승(政丞), 3대 대제학(大提學),
3대 대학자(大學者)가 배출되어 서씨(徐氏) 가문의 전성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성(渻)의 네 아들 경우(景雨)ㆍ경수(景需)ㆍ경빈(景霦)ㆍ경주(景周) 형제중에 맏아들
경우(景雨)는 우의정(右議政)에 올랐고, 차남 경수(景需)의 현손(玄孫) 종제(宗悌)의
딸이 영조비(英祖妃)가 되었으며, 종제(宗悌)의 현손(玄孫) 용보(龍輔)는 영의정
(領議政)을 역임했다.
넷째 아들 경주(景周)는 정신옹주(貞愼翁主:선조왕의 장녀)와 혼인(婚姻)하여 선조
(宣祖)의 부마(駙馬)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에서 영의정(領議政) 6명과 좌의정(左議政)
1명, 대제학(大提學) 5명이 배출되어 경수(景需)의 후손과 함께 명문(名門)의
기반을 다졌다.
서문(徐門)이 배출한 많은 인물 가운데 대표적인 열력(閱歷)을 살펴보면 숙종(肅宗)
때 영의정(領議政)에 오른 문중(文重)과 종태(宗泰), 영조(英祖) 때 영의정 지수(志修),
순조(純祖) 때 당보(堂輔) 등이 뛰어났고, 대제학(大提學) 명응(命膺)ㆍ유신(有臣)ㆍ
영보(榮輔)ㆍ기순(箕淳)과 판서(判書)를 지낸 문유(文裕)ㆍ문익(文益)ㆍ종급(宗伋)ㆍ
종옥(宗玉)ㆍ명빈(命彬)ㆍ호수(浩修)ㆍ회수(晦修)ㆍ유방(有防)ㆍ유린(有隣)ㆍ능보(能輔)ㆍ경보(耕輔)ㆍ좌보(左輔)ㆍ유구(有榘)ㆍ유보(裕輔)ㆍ재보(在輔)ㆍ가순(嘉淳)ㆍ영순(英淳)ㆍ헌순(憲淳)ㆍ상우(相雨)ㆍ상정(相鼎)등이 대표적이다.
한말(韓末)에 와서는 법부대신(法部大臣:법부의 우두머리 되는 벼슬) 광범(光範)과
의병장(義兵將) 상렬(相烈)ㆍ병희(丙熙)가 유명했고,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재필(載弼)은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하여 민족독립 운동에 일생을 바쳐 명문(名門)의 전통을 이었다.

 

          - 부천족보도서관에서 http://www.jokbo.re.kr/book/index.html?fnkey=10701069&fn=1070&sn=사&v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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